1부 어린 시절 · 1화
2026-09-05
어디서 태어나셨어요? 그곳은 어떤 곳이었나요?
전라북도 정읍, 산외면 너븐들이라고. 넓은 들이라고 너븐들인데 들은 넓어도 우리 땅은 없었어. 아버지가 담배 농사를 지었거든.
여름에 담뱃잎 따다 놓으면 온 집이 그 냄새야. 지금도 그 냄새 맡으면 속이 울렁거려.
나 낳던 날 아버지가 뭐라 그랬는지 알아? 방에 들어와 보지도 않았대. 딸이 넷째니까. 그래서 내 이름이 후남이야. 뒤에 남자 보자고.
…됐어, 뭘 그런 걸 다 물어.
내가 태어나던 날 얘기는 어머니한테 들었어.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 그 얘기를 여러 번 하셨거든. 처음엔 웃으면서 하시다가 나중엔 안 하셨어. 내가 듣기 싫어하는 걸 아셨나 봐.
그날 새벽에 어머니는 혼자 나를 받으셨대.
부르러 갈 사람이 없었어. 큰언니는 시집 밑천 보탠다고 읍내에 가 있었고 둘째는 열 살, 셋째는 넷이었어. 아버지는 담배 건조실에 계셨고. 가을이라 잎을 매달아 놓으면 불을 꺼뜨리면 안 되거든. 사흘 밤을 거기서 주무셨어.
방에 들어온 건 냄새뿐이었대. 문틈으로 담뱃잎 마르는 냄새가 들어왔다고. 달고 텁텁하고 조금 매운 냄새. 어머니는 그 냄새 맡으면서 나를 닦으셨대.
내가 울었는데 목소리가 컸다더라고.
문 밖에서 발소리가 섰대. 어머니는 그 소리를 들으셨어. 신발이 반듯하게 놓이는 소리였다고. 술은 아니었다고.
"뭐여."
아버지는 문을 안 여셨어. 문 뒤에서 물으셨대.
"딸이요."
그러고 발소리가 잠깐 없었대. 그다음엔 마당을 가로질러 가셨고. 정지 쪽이 아니라 건조실 쪽으로.
어머니는 나를 안고 그냥 앉아 계셨대. 내가 울음을 그치고 눈을 떴다고 하시더라고. 갓난애는 아무것도 못 본다는데 어머니는 그날 내가 당신을 봤다고 평생 그러셨어.
사흘 뒤에 아버지가 방에 들어오셨대.
들어와서 나를 보지는 않으셨고. 아랫목에 앉아서 담배를 마셨는데 종이가 얇아서 두 번 찢어졌다고. 세 번째에 붙였다고.
"이름."
"…예."
"후남이라 해라."
어머니가 고개를 드셨대.
"뒤 후 자에 사내 남 자여. 뒤에 남자 보게."
어머니는 아무 말도 안 하셨어.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고, 그 집에서 그 말에 대꾸를 해 본 여자가 없었으니까. 위로 셋도 그렇게 이름이 붙었어. 옥남이 정남이 말남이. 끝에 남자를 하나씩 달고 태어났는데 아직 남자가 안 왔거든.
아버지가 담배에 불을 붙이셨대. 연기가 천장으로 올라갔다고.
"이번엔 올 것이여."
왔어. 다섯 해 뒤에 성호가 태어났고, 그 집에서 그 애만 중학교에 갔어.
이름은 그대로 남았지. 호적에는 이듬해 이월로 올라갔어. 면사무소 서기가 붓으로 朴後男(박후남)이라고 적을 때 아버지가 옆에 서서 획이 제대로 나오나를 들여다보셨대. 그 글씨가 지금도 있어.
나는 그 이름으로 국민학교에 갔고, 그 이름으로 서울 가는 기차를 탔고, 그 이름으로 미싱을 밟았고, 그 이름으로 가게를 냈어. 일흔넷 되도록 한 번도 안 바꿨어.
바꿀 생각을 한 적은 있어. 한 번.
그 얘기는 한참 뒤에 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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