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어린 시절 · 10화
2026-09-14
그 시절 살던 동네는 어떤 모습이었나요?
신작로 하나 있고, 방앗간 있고, 그 끝에 상여집이 있었어. 상여집은 애들이 못 가. 무서워서.
방앗간 아저씨가 참 좋았는데, 우리 지나가면 튀밥을 한 줌씩 줬어.
그 아저씨가 나한테 처음으로 후남아, 이름 참 좋다 그랬어. 거짓말인 줄 알면서도 좋더라고.
너븐들은 길이 하나였어.
신작로가 마을을 가로지르고, 그 가운데에 방앗간이 있고, 끝에 상여집이 있었어. 상여집은 사람 죽으면 쓰는 걸 넣어 두는 집이라 애들은 근처에도 안 갔어. 낮에도 안 갔지.
방앗간은 반대야. 애들이 다 모여.
방앗간 아저씨는 이름이 없었어.
아니, 있었겠지. 근데 아무도 안 불렀어. 다들 방앗간 아저씨라고 했지. 나이가 마흔쯤 되셨을 거고, 왼쪽 다리를 저셨고, 여름에도 긴팔을 입으셨어.
그분이 애들이 지나가면 튀밥을 한 줌씩 주셨어. 값을 안 받으시고.
열 살 여름에 내가 혼자 지나갔어.
성호를 업고 있었지. 아저씨가 튀밥을 두 줌 주시더라고. 하나는 내가 먹고 하나는 성호 입에 넣어 주고.
"고맙습니다."
돌아서는데 부르시는 거야.
"후남아."
나는 멈췄어. 그 동네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어머니뿐이었거든. 아버지는 「야」라고 하셨고, 언니들은 「후남아」 대신 「니」라고 했고, 학교 선생님은 출석 부를 때만 부르셨어.
"이름 참 좋다."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될지 몰랐어.
이름이 좋을 리가 없다는 걸 그때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뒤에 남자 보자고 지은 이름이라는 말을 동네 사람들이 웃으면서 하는 걸 여러 번 들었어. 옥남 정남 말남 후남, 네 자매 이름을 나란히 부르면서 어른들이 웃었지.
그러니까 그 아저씨는 거짓말을 하신 거야.
그런데도 좋았어.
나는 「예」 하고 뛰어갔어. 등에 업힌 성호가 흔들려서 울었고.
사람이 이름을 불러 주는 게 그렇게 큰 일인 줄을, 그때는 몰랐어.
여섯 해 뒤에 구로동 대성섬유에서 나는 이름 없이 일했어. 반장은 「저 조용한 애」라고 했고, 명단에는 번호가 먼저 있었고, 벌집 주인은 「삼호실」이라고 불렀어.
열여덟에 미싱사 명단에 내 이름이 올라간 날, 나는 아침마다 삼십 분 일찍 가서 그 벽을 봤어.
박후남.
아무도 없을 때 혼자 봤어. 왜 그러는지 나도 몰랐어.
방앗간 아저씨는 내가 서울 간 이듬해에 돌아가셨어. 말남 언니가 편지에 적어 보냈고 이장이 읽어 줬어.
나는 그 소식을 듣고 아무 말도 안 했어.
장례에도 못 갔어. 그때 잔업이 있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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