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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어린 시절 · 11화

칠판에 걸린 공책

2026-09-15

질문

어릴 때 꿈은 뭐였어요?

답

선생님. 내가 글씨를 잘 썼거든. 담임 선생님이 칠판에 내 공책을 걸어 놓은 적이 있어.

그때 딱 정했어, 나는 선생님 할란다.

근데 국민학교 졸업하고 그 말을 다시 한 적이 없어. 한 번도. 지금 처음 해.

사 학년 가을이었어.

받아쓰기를 했는데 선생님이 공책을 걷어 가시더니 다음 날 하나를 칠판에 걸어 놓으셨어. 압정으로 위를 두 군데 꽂아서. 내 거였어.

"이렇게 쓰는 거다."

애들이 다 봤지. 나는 고개를 못 들었어. 창피해서가 아니고 얼굴이 뜨거워서.

그 공책이 하루 종일 거기 걸려 있었어. 나는 수업 시간마다 그걸 봤어. 내가 쓴 글씨인데 칠판에 걸려 있으니까 남의 글씨 같더라고.

그날 집에 오는 길에 정했어. 나는 선생님 할란다.


말은 안 했어. 누구한테도 안 했어.

우리 집에서 그런 말을 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았거든. 웃지도 않으실 거야. 그냥 아무 말씀도 안 하시겠지. 그게 더 무서워.

대신 글씨를 더 열심히 썼어. 몽당연필이라 손가락이 아픈데도 획을 천천히 그었어. 공책이 아까우니까 연필 자국이 안 보일 만큼 흐리게 먼저 쓰고 그 위에 진하게 덧썼어.

그러면 한 장을 두 번 쓸 수 있거든.


육오년에 국민학교를 졸업했어.

그러고 그 말을 한 번도 안 했어. 서울 가서도 안 했고, 야학 다닐 때도 안 했고, 애 셋 키우면서도 안 했고, 가게 십사 년 하면서도 안 했어.

한 번은 할 뻔했어. 칠일년에 야학에서 그 사람이 내 공책 보고 글씨가 곱다고 했을 때. 그때 입까지 나왔는데 삼켰어.

왜 안 했냐고? 하면 진짜가 되잖아. 안 될 게 진짜가 되면 그때부터 아픈 거야.


우리 미영이가 대학 붙고 나서 사범대를 안 가고 딴 데를 갔어.

내가 아무 말도 안 했어. 마음속으로는 사범대 가라고 백 번을 말했는데 입 밖으로는 한 번도 안 냈어. 내가 못 한 걸 딸한테 시키는 거 같아서.

지금 생각하면 한 번쯤은 말해 볼걸 그랬나 싶어.

일흔넷에 처음 말하네. 나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어.

당신의 하루도 이렇게 남습니다

질문에 말로 답하시면 그것이 한 권의 책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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