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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어린 시절 · 13화

국밥 한 그릇

2026-09-17

질문

어린 시절 가장 행복했던 하루를 꼽는다면 언제인가요?

답

어머니 따라 정읍 장에 간 날. 열 살쯤 됐나. 십 리를 걸어 나가서 버스를 타는데, 어머니가 국밥을 한 그릇 시켜서 나 혼자 먹으라 그래.

어머니는 숭늉만 드시고. 내가 반 남겼더니 그때서야 드시더라고.

나중에 알았어. 처음부터 그럴 셈이었던 거야.

장날은 오일에 한 번이야.

어머니가 담뱃잎을 내다 팔 때만 가시는데, 그날은 나를 데리고 가셨어. 왜 나였는지 몰라. 위로 셋은 일이 있었나 봐.

십 리를 걸어 나가서 버스를 타. 버스는 하루에 세 번인데 놓치면 그날 장은 못 봐. 그래서 새벽에 나가.

내가 뒤처지니까 어머니가 손을 잡으셨어. 어머니 손이 두꺼워. 손바닥이 딱딱하고 손가락 마디가 굵어. 열 살짜리 손이 그 안에 다 들어가.


장에서 담뱃잎을 넘기고 나오는데 어머니가 국밥집 앞에 서셨어.

"먹고 가자."

나는 놀랐어. 우리가 밖에서 뭘 사 먹은 적이 없거든. 한 번도 없어.

들어가서 앉으니까 어머니가 한 그릇을 시키셨어. 한 그릇.

"엄니 건?"

"나는 아까 먹었어."

국밥이 나왔는데 김이 올라와. 국물이 뽀얗고 위에 파가 떠 있고. 나는 숟가락을 들었다가 어머니를 봤어. 어머니는 숭늉 그릇을 앞에 놓고 계셨어.

"먹어."


먹었어. 절반쯤 먹고 숟가락을 놨어.

"배불러."

"더 먹어."

"진짜 배불러."

어머니가 나를 보시더라고. 그러고 아무 말 없이 그릇을 당기셨어. 숟가락도 내가 쓰던 걸 그냥 쓰시고.

드시는데 빠르셨어. 아주 빠르셨어.

그날 나는 배가 안 불렀어. 열 살이 국밥 반 그릇에 배가 부르겠어. 그런데 남겨야 어머니가 드신다는 걸 알았어. 그건 누가 가르쳐 준 게 아니야.


나중에 알았어. 어머니는 아까 아무것도 안 드셨어.

처음부터 한 그릇을 시켜서 내가 남기면 드실 셈이었던 거야. 내가 다 먹었으면 굶고 오셨겠지.

그걸 언제 알았냐면, 내가 미영이한테 똑같이 하고 있을 때.

봉천동에서 가게 할 때 손님 없는 날 라면 하나를 끓여서 애 먼저 주고 국물에 밥을 말았어. 그러다가 손이 멈췄어. 아, 우리 어머니가 이거였구나 하고.

일흔넷 먹은 지금도 제일 행복했던 하루를 꼽으라면 그날이야. 배가 안 불렀던 그날.

당신의 하루도 이렇게 남습니다

질문에 말로 답하시면 그것이 한 권의 책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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