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어린 시절 · 18화
2026-09-22
그 시절 우리 집 형편은 어땠나요?
봄에 양식이 떨어져. 삼사월이 제일 무서워. 그걸 보릿고개라 그랬는데, 우리 집은 매년 넘었어.
어머니가 남의 집에 가서 쌀을 꿔 오는데, 꾸러 갈 때는 꼭 나를 데리고 가. 애를 데리고 가면 덜 매몰차다고.
…그거 알고 나서는 따라가기가 싫더라고. 근데 계속 따라갔어.
가을에 거둔 것이 겨울을 나고 나면 바닥이 보여.
정월까지는 어떻게 버텨. 이월도 되고. 삼월이 문제야. 보리는 아직 안 여물고 쌀은 없고. 그 두 달을 보릿고개라 그랬어.
우리 집은 매년 넘었어. 한 해도 안 거른 것 같아.
어머니가 남의 집에 쌀을 꾸러 가셔.
가을에 갚는 조건인데, 이자가 붙어. 한 말 꾸면 가을에 한 말 반을 갚아. 그러니까 갚고 나면 또 모자라고, 또 꾸고. 그게 매년 돌아가는 거야.
그 집이 동네 안에 있어. 걸어서 십 분.
어머니는 갈 때 꼭 나를 데리고 가셨어.
처음엔 왜 그러시는지 몰랐어. 심부름 시키시나 했지. 그런데 가면 나는 아무것도 안 해. 마당에 서 있기만 해.
어머니는 마루 아래 서서 말씀하시고, 그 집 아주머니는 마루에 앉아서 들으시고.
"이번만 한 말만."
"작년 것도 아직인데."
"가을에 다 드릴게요."
나는 그 옆에 서 있어.
열두 살쯤에 알았어.
동네 아주머니 둘이 우물가에서 하는 말을 들었거든.
"저 집은 꼭 애를 델꼬 와."
"애가 있으면 못 자르지."
그 말을 듣고 얼굴이 화끈했어.
내가 서 있는 게 그거였구나. 나는 방패였구나.
그다음부터 따라가기가 싫었어. 근데 어머니가 「후남아」 하고 부르시면 나갔어. 한 번도 안 나간 적이 없어.
싫다고 말을 못 했어. 말하면 어머니가 어떻게 하시겠어. 혼자 가시겠지. 혼자 가시면 못 꾸실 거고.
그러니까 아는 채로 계속 서 있었어. 스물 몇 번은 서 있었을 거야.
내가 서울 가서 첫 월급 부치고 나서, 어머니가 편지를 보내셨어. 이장이 대신 쓴 거.
「후남아 고맙다」 다섯 자.
나는 그 다섯 자를 보면서 마당에 서 있던 게 생각났어.
이제 안 서도 되는구나 싶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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