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어린 시절 · 21화
2026-09-25
어린 시절 나를 가장 예뻐해 준 사람은 누구였나요?
방앗간 아저씨. 아까 그 튀밥 주던 양반.
우리 아버지가 딸이라고 본체만체할 때 그 아저씨는 이름을 불러 줬어. 후남아, 하고.
그게 뭐라고 그렇게 좋았나 몰라. 사람이 이름 불러 주는 게 그렇게 큰 거야.
열두 살 여름에 소나기를 만났어.
학교 파하고 오는 길인데 개울을 하나 건너고 나니까 쏟아지더라고. 우산이 있을 리가 없지. 뛰다가 방앗간 처마 밑으로 들어갔어.
아저씨가 안에서 나오시더라고.
"들어와라."
"괜찮아요."
"비 다 맞고 뭐 하냐."
방앗간 안은 뿌였어. 겨가 날려서 공기가 하얘. 냄새가 고소하고.
아저씨가 나무 궤짝을 하나 밀어 주셨어. 거기 앉아서 비를 봤지.
한참 아무 말도 안 했어.
그러다 아저씨가 그러시더라고.
"니 아부지 잘 계시냐."
"예."
"…그려."
또 조용해.
내가 아저씨 다리를 보고 있었나 봐.
왼쪽 다리를 저시거든. 걸을 때 몸이 한쪽으로 기울어.
아저씨가 그걸 아셨어.
"궁금하냐."
나는 아니라고 했어. 그랬더니 웃으시면서 그러셨어.
"열아홉에 그랬다. 남의 집 소를 몰고 가다가."
그다음은 말씀 안 하셨어. 나도 안 물었고.
비가 그칠 때쯤 아저씨가 튀밥을 한 봉지 싸 주셨어. 한 줌이 아니고 봉지로.
"성호 갖다 줘라."
성호 이름을 아시더라고. 그게 놀라웠어.
"아저씨."
"응."
"아저씨는 왜 내 이름 알아요?"
"…니가 여기 젤 많이 지나가."
그 말이 왜 그렇게 좋았는지 몰라. 그냥 많이 지나가서 안다는 소린데.
우리 집에서 아버지는 나를 「야」라고 부르셨어. 언니들은 「니」라고 했고. 이름이 있는데 안 부르는 거야.
그런데 남이 부르더라고. 값도 안 받는 사람이.
그 아저씨 이름은 나도 몰라.
동네 사람들이 다 「방앗간」이라고 불렀으니까. 내가 이름을 불러 드린 적이 한 번도 없어.
그게 지금도 걸려.
그 양반은 내 이름을 불러 줬는데 나는 그 양반 이름을 모르고 살았어. 예순 해가 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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