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어린 시절 · 22화
2026-09-26
겨울나기 풍경을 들려주세요 — 김장하던 날, 연탄 갈던 기억 같은 것들요.
연탄은 서울 가서 처음 만졌어. 시골은 나무야. 겨울 되기 전에 산에 가서 삭정이를 해다가 처마 밑에 쟁여 놓는데, 그게 얼마나 쌓였나 보고 그 집 형편을 알아. 우리 집은 늘 얇았어.
김장은 백 포기쯤 했나. 배추를 개울에서 씻는데 손이 빨갛다 못해 하얘져.
그러면 어머니가 내 손을 당신 옷 속에 넣어 줘. 겨드랑이에. 그게 따뜻했어.
겨울 준비는 가을에 해.
산에 가서 삭정이를 해 와. 생나무는 안 돼. 젖어서 연기만 나. 죽어서 마른 가지를 골라 오는 거야.
그걸 처마 밑에 쟁여 놔. 그 더미가 얼마나 큰가를 보면 그 집 형편을 알아. 지나가면서 다들 봐.
우리 집은 늘 얇았어.
김장은 동짓달에 해.
백 포기쯤 했나. 우리 밭에서 난 것에다 남의 집에서 얻은 걸 보태서.
배추를 개울에서 씻어. 우물물로 다 못 하거든. 물이 많이 드니까.
개울물이 어떤지 알아? 얼음장이야. 위에 살얼음이 껴 있으면 그걸 깨고 손을 넣어.
처음엔 시려. 그다음엔 아파. 그다음엔 아무 느낌이 없어져.
손을 들어 보면 빨갛다 못해 하얘. 손가락이 내 것 같지가 않아. 굽혀도 굽혀지는 느낌이 안 나.
그러면 어머니가 그러셔.
"이리 와."
어머니가 저고리 앞섶을 열고 내 두 손을 당신 겨드랑이에 넣으셔.
거기가 사람 몸에서 제일 따뜻한 자리야. 손이 거기 들어가면 처음엔 아무것도 모르다가, 조금 있으면 저리기 시작해. 피가 도는 거지. 저린 게 아프기까지 해.
그렇게 한 이 분쯤 있어.
어머니는 그동안 아무 말도 안 하셔. 개울물 소리만 나.
어머니 몸도 차가웠을 거야. 나만 씻은 게 아니고 어머니가 더 많이 씻으셨으니까. 차가운 사람이 더 차가운 사람 손을 녹여 주는 거야.
그걸 그때는 몰랐어. 어머니는 원래 따뜻한 줄 알았지.
내가 애 셋 키울 때 겨울에 애들 손이 차면 똑같이 했어. 저고리 대신 스웨터였지만.
미영이가 다 커서 그러더라고.
"엄마 그거 어디서 배웠어?"
"할머니."
"할머니는?"
"몰라. 안 물어봤어."
이제 물어볼 데가 없어. 어머니 가신 지 이십일 년이야.
다음 화23화 · 별이 꽉 찬 하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