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어린 시절 · 24화
2026-09-28
처음 봤을 때 신기했던 물건이 있나요? (텔레비전, 라디오, 자동차…)
이장 집 라디오. 열 살 때인가. 나무 상자에서 사람 소리가 나.
나는 그 안에 사람이 들어 있는 줄 알고 뒤로 돌아가 봤어. 뒤에 아무것도 없으니까 무섭더라고.
동네 사람들이 마루에 다 모여서 그걸 들어. 저녁마다. 텔레비전은 한참 뒤에, 서울 가서 남의 집 창문 너머로 봤어.
육이년쯤에 이장 집에 라디오가 들어왔어.
동네에서 처음이야. 아니, 그때 우리 동네에 그거 하나뿐이었어.
저녁이 되면 사람들이 이장 집 마루로 모여. 어른들이 먼저 앉고 애들은 마당에 서서 들어. 스무 명쯤 됐나.
나무 상자야.
이만한 크기에 앞에 천 같은 게 덮여 있고, 옆에 동그란 손잡이가 두 개 있어. 이장 아저씨가 그걸 돌리면 소리가 커졌다 작아졌다 해.
거기서 사람 소리가 나.
남자 목소리인데 우리 동네 사람이 아니야. 말투가 달라. 서울말이야.
나는 그 안에 사람이 들어 있는 줄 알았어.
열 살이 그렇게 생각하지. 소리가 나면 사람이 있는 거잖아.
한번은 애들이 다 앞을 보고 있을 때 내가 뒤로 돌아가 봤어. 상자 뒤에 뭐가 있나 하고.
아무것도 없어. 그냥 나무판이고 구멍이 몇 개 뚫려 있고.
그게 더 무서웠어.
사람이 있으면 이해가 되는데, 없는데 소리가 나니까.
집에 와서 어머니한테 물었어.
"엄니, 저 안에 사람 없대."
"그려."
"근데 어떻게 소리가 나?"
"…모르지."
어머니도 모르셨어. 아무도 몰랐을 거야. 그냥 다들 듣기만 했지.
나는 그 뒤로 저녁마다 갔어. 소리가 궁금해서가 아니고, 없는데 나는 게 궁금해서.
거기서 노래도 나오고 뉴스도 나와. 뉴스는 무슨 소린지 몰라. 노래는 따라 불렀어.
칠십년대에 구로동 공장에 스피커가 있었어. 점심때만 틀어 주는 거.
거기서 노래가 나오면 이백 명이 밥을 입에 넣은 채로 듣는데, 나는 그때 이장 집 마루가 생각났어.
똑같더라고. 스무 명이 마당에 서 있던 거하고 이백 명이 미싱 앞에 앉아 있던 거하고.
사람이 상자에서 나는 소리를 들을 때 얼굴이 다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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