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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청춘 시절 · 29화

글씨가 곱네요

2026-10-03

질문

첫사랑 이야기를 들려주실 수 있나요?

답

야학에 강사로 오던 대학생이 있었어. 윤기태라고. 나보다 세 살 위인가. 국어를 가르치는데, 내 공책을 보더니 글씨가 참 곱다고 그러더라고.

…그 말 한마디였어, 진짜로. 그거 하나 듣자고 일 년을 다녔어.

그해 겨울에 그 사람이 안 나왔어. 군대 갔다는 말도 있고 학교를 그만뒀다는 말도 있고. 물어볼 사람이 없더라고. 물어볼 사이도 아니었고.

야학은 공단 옆 교회 지하에 있었어.

책상이 열두 개고 칠판이 하나야. 겨울에 난로를 하나 피우는데 그거 하나로는 안 따뜻해.

강사가 셋이었어. 다 대학생이야. 돈은 안 받고 와.

국어를 가르치는 사람이 윤기태였어.


키가 크고 안경을 썼어. 목소리가 낮고. 말을 천천히 해.

첫 시간에 자기 이름을 칠판에 썼어. 尹起泰(윤기태). 한자로.

"한자는 몰라도 돼요. 그냥 기태라고 부르세요."

아무도 안 불렀어. 다들 선생님이라고 했지.


한 달쯤 됐을 때야.

받아쓰기를 했는데 그 사람이 공책을 걷어 갔어. 다음 시간에 나눠 주면서 하나씩 뭐라고 한 마디씩 해.

내 차례가 됐어.

"박후남 씨."

씨라고 하더라고. 공장에서는 아무도 그렇게 안 부르는데.

"글씨가 곱네요."


그게 다야.

진짜로 그게 다야. 그 사람이 나한테 한 말은 그거하고 「수고했어요」하고 「다음 주에 봐요」밖에 없어. 셋을 다 합쳐도 열 마디가 안 돼.

근데 나는 그 말 한마디를 들으려고 일 년을 다녔어.

잔업이 있으면 못 가. 일주일에 두 번 가면 많이 가는 거야. 그런데도 그 두 번을 위해서 오전을 버티고 오후를 버텼어.


칠일년 겨울에 안 나왔어.

한 주 안 나오고, 두 주 안 나오고, 세 주째에 다른 사람이 왔어.

군대 갔다는 말도 있고 학교를 그만뒀다는 말도 있고.

물어볼 사람이 없더라고.

교회 목사님한테 물어보면 되는데 못 물어봤어. 물어볼 사이가 아니잖아. 나는 그 사람 학생이고, 그것도 일주일에 두 번 나오는 학생이고.


그 뒤로 나는 야학에 두 달을 더 다녔어. 그러고 안 갔어. 국어가 재미없어져서가 아니야. 왜 그만뒀는지는 나도 몰라.


편지가 몇 장 있었어.

편지랄 것도 없어. 숙제 공책에 적어 준 말들이야. 「이 부분 다시 써 보세요」 이런 거. 그걸 내가 찢어서 모아 뒀어.

칠사년에 시집갈 때 아궁이에 태웠어.

태우면서 별생각이 없더라고. 그게 좀 이상했어.

당신의 하루도 이렇게 남습니다

질문에 말로 답하시면 그것이 한 권의 책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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