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어린 시절 · 3화
2026-09-07
부모님은 어떤 분이셨어요?
아버지는 말이 없었어. 대신 손이 먼저 나갔지. 술을 드시면 마루를 치는데, 우리는 그 소리 나면 다 흩어져.
어머니는… 어머니는 새벽 네 시에 일어나. 내가 눈을 뜨면 벌써 머리를 얹고 있어.
글은 몰랐어. 이름 석 자도 못 썼어. 근데 우리 다섯 명 생일은 다 외웠어. 음력으로. 그거 하나는 안 틀렸어.
아버지가 말씀을 하시는 날이 셋뿐이었어. 담배 값 정해지는 날, 사람 죽는 날, 그리고 술 드신 날.
앞의 둘은 일 년에 몇 번 없지.
술을 드시면 마루를 치셨어. 사람을 치는 게 아니고 마루를 치셔. 손바닥으로 한 번, 두 번, 세 번. 그러면 방에 있던 우리가 소리 없이 흩어져. 큰언니는 뒤꼍으로, 둘째 셋째는 헛간으로, 나는 어머니 뒤로.
성호만 안 흩어져. 성호는 아버지 무릎에 앉아.
나는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 그때는 그게 세상 이치였으니까.
어머니는 새벽 네 시에 일어나셨어.
내가 눈을 뜨면 벌써 머리를 얹고 계셔. 뒤통수에서 손이 움직이는데 거울도 없이 그렇게 하셔. 사십 년을 하니까 손이 아는 거지.
일곱 살 여름에 내가 여쭤봤어.
"엄니는 왜 그렇게 일찍 일어나?"
"할 게 있응께."
"뭔데."
"많어."
그 이상은 말씀을 안 하셨어. 그런데 그날 내가 따라 나가 봤거든. 새벽 네 시에 할 일이 정말로 많더라고. 물 길어 오고, 불 지피고, 소여물 쑤고, 아버지 옷 다리고, 그러고 나서야 여섯 시에 다섯을 깨우셨어.
어머니는 글을 모르셨어.
당신 이름 석 자도 못 쓰셨어. 내가 국민학교 들어가서 제일 먼저 한 게 어머니 이름을 종이에 써 드린 거야. 한자는 못 쓰고 한글로만.
한참 보시더라고. 그러고 접어서 옷고름 안에 넣으셨어.
"이게 나여?"
"응."
"짧네."
그런 분이 우리 다섯 생일을 하나도 안 틀리셨어. 음력으로.
큰언니가 삼월 초하루, 둘째가 시월 열엿새, 셋째가 유월 스무날, 내가 팔월 스무이레, 성호가 정월 초아흐레.
나는 마흔 넘어서야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았어. 적어 놓을 데가 없는 사람이 날짜 다섯 개를 오십 년 동안 안 틀린다는 게.
어머니는 이천오년에 가셨어. 장례식장에서 내가 사람들한테 어머니 이름을 말해야 됐거든.
정순임입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옷고름에 접혀 있던 그 종이가 어디로 갔을까 생각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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