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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청춘 시절 · 32화

한 달 안에 셋

2026-10-06

질문

젊을 때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언제였고, 어떻게 이겨내셨어요?

답

열아홉 살 겨울. 그해에 세 가지가 한꺼번에 왔어. 그 사람이 안 나오고, 언니가 손을 다치고, 성호 고등학교 등록금이 왔어. 셋이 한 달 안에.

…어떻게 이겨냈냐고? 안 이겨냈어. 그냥 지나가더라고.

사람들이 이겨냈다고 말하는 건 다 나중에 갖다 붙이는 거야. 그때는 그냥 아침에 일어나서 공장에 갔어. 그거밖에 안 했어.

칠일년 십일월이야.

첫째 주에 야학 선생이 안 나왔어.

둘째 주에 언니가 다쳤어.

셋째 주에 집에서 편지가 왔어. 성호 고등학교 등록금.


언니 얘기부터 할게.

그때 언니는 식모를 그만두고 영등포 프레스 공장에 다녔어. 식모보다 돈이 나으니까.

프레스가 뭐냐면 쇠를 눌러서 모양을 내는 기계야. 발판을 밟으면 위에서 쿵 하고 내려와.

손이 안 빠지면 손이 눌려.


언니는 오른손 약지가 잘렸어.

첫 마디에서.

회사에서 돈을 얼마 줬는지 몰라. 언니가 안 알려 줬어. 나중에 알았는데 병원비도 안 되는 돈이었어.

내가 그때까지 모은 돈이 있었어. 이 년 넘게 모은 거.

그걸 다 냈어.


언니가 나한테 그러더라고.

"후남아 미안하다."

나를 서울로 부른 사람이 나한테 미안하다고 하는 거야.

그 말이 그렇게 무겁더라고. 손이 잘린 것보다 그 말이 더 무거웠어.

그날부터 내가 언니 노릇이야.


셋째 주에 편지가 왔어.

이장이 대신 쓴 거. 성호가 고등학교에 붙었다고. 등록금이 얼마라고.

읍내 고등학교야. 등록금에 하숙비에.

편지 끝에 「어쩌면 좋겄냐」 그렇게 쓰여 있었어. 어머니 말씀을 이장이 그대로 적은 거지.


나는 그 편지를 사흘 들고 다녔어.

주머니에 넣고 공장에 가고, 밥 먹고, 자고.

사흘째에 우체국에 갔어. 돈이 없으니까 부칠 게 없는데도 갔어.

우체국 아저씨가 나를 보더니 그러더라고.

"오늘은 안 부치나."

"…예."


그러고 두 달을 벌어서 보냈어. 잔업을 다 하고, 특근을 다 하고. 그해 겨울에 내가 몇 시간을 잤는지 몰라.


이겨냈냐고 물으면 나는 아니라고 해.

이겨낸 게 아니야. 그냥 지나갔어.

지나갈 때까지 아침에 일어나서 공장에 간 거야. 그거밖에 안 했어. 대단한 결심 같은 건 없었어.

사람들이 「이겨냈다」고 하는 건 다 나중에 갖다 붙이는 말이야. 지나고 나서 보니까 지나갔더라, 그게 진짜야.

당신의 하루도 이렇게 남습니다

질문에 말로 답하시면 그것이 한 권의 책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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