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청춘 시절 · 38화
2026-10-12
처음으로 '어른이 됐구나' 느낀 순간은 언제였어요?
언니 병원비를 내가 냈을 때. 열아홉이었어.
언니가 프레스에 약지를 잘렸는데, 회사에서 얼마 안 주더라고. 내가 그때까지 모은 돈이 있었어. 그걸 다 냈어.
언니가 나한테 그러더라고, 후남아 미안하다. 나를 서울로 부른 사람이 나한테 미안하다고 하는데 그 말이 그렇게 무겁더라고. 그날부터 내가 언니 노릇이야.
병원이 영등포에 있었어.
언니가 실려 갔다는 말을 나는 그날 저녁에 들었어. 같은 공장 사람이 알려 줬어.
공장에서 병원까지 뛰었는지 버스를 탔는지 기억이 안 나.
가 보니까 언니가 침대에 앉아 있어.
오른손에 붕대를 감고. 얼굴이 하얘.
나를 보더니 웃으려고 하더라고. 웃는 게 안 되는데 웃으려고 해.
"괜찮여."
의사가 그러는데 첫 마디를 잘랐대.
붙일 수가 없대. 뭉개져서.
회사에서 사람이 왔어.
봉투를 하나 놓고 갔어. 언니가 그걸 안 열어. 내가 열었지.
병원비도 안 되는 돈이야.
내가 그 사람한테 뭐라고 하려고 했는데 언니가 내 팔을 잡았어.
"하지 마."
나한테 돈이 있었어.
이 년 넘게 모은 거. 월급을 다 부치고 남은 걸 조금씩 모은 거라 많지는 않아. 그래도 병원비는 됐어.
그걸 다 냈어.
언니가 그걸 알고 그러더라고.
"후남아 미안하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아무 말도 못 했어. 이 사람이 나를 서울로 불렀어. 차비를 부쳐 줬고, 사람 쓴다고 알려 줬고, 처음 두 달 밥을 먹여 줬어. 그 사람이 나한테 미안하다고 해.
손이 잘린 것보다 그 말이 무거웠어.
무겁다는 게 뭐냐면, 이제 내가 위가 됐다는 거야. 언니가 아래로 내려간 거고.
열아홉에 그게 됐어.
퇴원하고 언니가 우리 벌집에 두 달 있었어.
두 평에 넷이 잤어. 순덕이 명자가 아무 말도 안 했어. 고마웠지.
언니는 오른손을 잘 안 썼어. 밥도 왼손으로 먹으려고 하고.
언니는 그 뒤로 평생 사진 찍을 때 손을 뒤로 뺐어.
작년 설에 갔더니 아직도 그러더라고. 일흔여덟인데.
내가 그랬어.
"언니, 이제 좀 앞으로 내."
언니가 웃기만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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