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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청춘 시절 · 49화

보따리가 무거웠다

2026-10-23

질문

명절 귀향길 풍경을 들려주세요 — 기차역, 버스터미널의 그 북적임요.

답

영등포역. 추석 전날 밤에 가면 표가 없어. 그래서 입석으로 타. 서서 가는 거야, 아홉 시간을.

화장실 앞에 신문지 깔고 앉은 사람도 있고. 다들 보따리가 있어.

나는 어머니 내복하고 성호 운동화를 들고 갔어. 내 건 하나도 없어. 그게 그렇게 무거운데도 안 놓겠더라고.

추석에 고향에 가는 건 삼 년 만이었어.

육팔년에 서울 와서 그해 추석은 못 갔어. 차비가 없어서.

육구년도 못 갔고.

칠십년에 처음 갔어.


표를 못 사.

추석 전주부터 매표소에 줄을 서는데, 우리는 일요일밖에 못 가.

일요일에 가면 이미 없어.


그래서 입석이야.

입석은 자리가 없는 표. 서서 가는 거.

영등포에서 정읍까지 아홉 시간.


기차가 들어오는데 사람이 밀어.

밀려서 타는 거야. 발이 땅에 안 닿아도 타져.


안에 들어가면 통로에 사람이 꽉 차.

앉을 데가 없어. 화장실 앞에 신문지를 깔고 앉은 사람도 있어.

나는 서서 갔어. 아홉 시간을.


다들 보따리가 있어.

보따리 없이 가는 사람이 없어.

옷이든 먹을 거든 뭐든 들고 가.


내 보따리에는 어머니 내복하고 성호 운동화가 있었어.

내복은 시장에서 산 거. 운동화는 성호가 중학교에 들어갔으니까.

내 건 하나도 없어.


아홉 시간을 서 있으면 다리가 아픈 게 아니라 없어져. 감각이 없어지는 거야.

그런데 보따리는 안 놓겠더라고.

발밑에 놓으면 되는데, 사람들이 밟을까 봐 안고 있었어.


새벽에 정읍역에 내렸어.

거기서 또 십 리를 걸어야 돼.


동네 어귀에 들어서니까 해가 뜨고 있었어.

어머니가 마당에 나와 계셨어.

언제부터 나와 계셨는지 몰라.


나를 보시더니 아무 말도 안 하시고 보따리를 받으셨어.

받아 들고 무게에 놀라시더라고.

"뭘 이렇게."


방에 들어가서 풀었어.

내복하고 운동화를 꺼내니까 어머니가 한참 보셨어.

"니 건 없냐."

"…나는 서울에 있어."


그게 무슨 대답이야.

근데 그때는 그게 대답이 됐어.

당신의 하루도 이렇게 남습니다

질문에 말로 답하시면 그것이 한 권의 책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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