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어린 시절 · 9화
2026-09-13
어린 시절 가장 무서웠던 일은 무엇이었나요?
아버지 신발 소리. 신작로에서 마당까지 들어오는 소리가 있는데, 그게 반듯하면 괜찮고 끌리면 술이야. 우리는 그 소리로 다 알아.
끌리는 소리 나면 어머니가 우리를 뒷문으로 밀어. 아무 말 안 하고 손으로만 밀어.
그러면 우리는 담벼락에 붙어서 소리가 그칠 때까지 서 있어. 겨울에도. …말도 마.
그 집에서 저녁은 소리로 시작됐어.
신작로에서 마당까지가 서른 걸음쯤 돼. 흙길이라 발소리가 잘 나. 걸음이 고르면 아버지가 맨정신이시고, 발끝이 끌리면 술이야. 서른 걸음 중에 다섯 걸음만 들으면 알아.
끌리는 소리가 나면 어머니가 먼저 움직이셔.
말은 안 하셔. 부엌에서 나와서 우리 등을 손으로 미셔. 큰언니는 뒤꼍으로, 둘째 셋째는 헛간으로, 나하고 성호는 뒷문 밖 담벼락으로.
담벼락은 북쪽이라 겨울에 얼어 있어. 등을 대면 얇은 저고리 사이로 냉기가 바로 들어와. 나는 성호를 앞에 세우고 내가 벽에 붙었어. 그러면 걔가 덜 춥거든.
안에서 마루 치는 소리가 나. 손바닥으로 한 번, 두 번, 세 번.
세 번에서 그치면 그날은 끝이야. 다섯 번을 넘으면 오래가고.
한번은 눈이 왔어.
성호가 다섯 살이었으니까 육이년 겨울이지. 담벼락에 한 시간 가까이 서 있었어. 성호가 자꾸 졸아서 내가 계속 흔들었고.
"자면 안 돼."
"추워."
"알어. 조금만."
나는 내 저고리 앞섶을 열어서 성호를 넣었어. 그러고 팔로 감쌌지. 눈이 어깨에 쌓이는 게 느껴지더라고.
안에서 소리가 그쳤을 때 어머니가 뒷문을 열고 나오셨어. 아무 말씀도 안 하고 둘을 안아 들이셨어. 방에 들어가서야 내 등을 만지셨는데 저고리가 젖어 있었어.
그날 어머니가 하신 말씀이 한 마디야.
"…욕봤다."
나는 평생 그 소리를 들었어. 문래동 셋방에서도, 개봉동 아파트에서도, 봉천동 가게 뒷방에서도. 사람이 들어오는 발소리를 먼저 듣고 그다음에 얼굴을 봐.
칠삼년 겨울에 문래동 철공소 앞에서 그이를 처음 만났을 때도 제일 먼저 한 게 그거였어. 걸어오는 걸 보면서 발소리를 들었어.
고른 걸음이었어.
그때는 그게 뭘 뜻하는지 나도 몰랐어. 모르면서 그 사람하고 살기로 했지.
그리고 사십오 년 동안, 그 사람 발소리는 한 번도 끌린 적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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